사단의 정의1 \" 문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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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오후 ‘어 성경이 읽어지네’ 성경 공부 시간에 성경 공부를 하고
몇 분 남은 시간에 특별히 사순절 기간이라 예수님에 대해 말씀을 나누다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 금식하신 후 마귀가 와서 세 번 시험을 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갑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제자를 통해 다시 한번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다가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시니이다’(마16:16) 라는
말 한마디 잘 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엄청 칭찬을 듣고
자기를 통해 교회도 세우고 큰 선물(천국열쇠)도 받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기가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 큰 소리칩니다
(예수님이 왕이되면 자기가 국무총리 한번 해 먹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 지금까지 3년을 쫓아 다닌 것이 물거품이되니까)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마16:23)
저는 아이들 분반 공과 시간에 아이들에게 이 말씀을 많이 인용해 사용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외울 정도로 너무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성경 공부 시간 졸다가 이 말씀을 듣고 정신 번쩍하고 돌아왔습니다 사단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자가 사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라는 말씀을 읽는 중에 번뜩 스쳐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계13:18)
사람의 일과 사람의 수가 같은 뜻으로 사용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의 일 = 사람의 수 = 이 세상적인 지혜 = 육신의 생각)
지혜가 여기 있으니 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 (골2:3 지혜와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
Microsoft Office Excel을 사용하다 보면 숫자를 텍스트로 사용 할 것인지 숫자로 사용 할 것인지 구분하는 셀 서식 메뉴가 있습니다 숫자이지만 연산에 사용하지 않으면 텍스트로 처리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의 수 혹은 사단 마귀의 수라고 하는 666을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의 수’에서 ‘수’를 첫 번째는 문자적인 수(手)로 보는 것과
두 번째는 숫자적인 수(數)로 생각해 보는 것 입니다
첫 번째 문자적인 수(手)로 볼 경우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잘하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나보다 “수”가 몇 수 높다 라고 말합니다
혹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잔 머리 쓰지 마라’ ‘나는 네 머리 위에 있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떤 분이 친구A의 전도로 다음주에 교회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친구B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며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친구B에게 나 다음주에 교회에 간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B가 말했습니다
‘야 교회 가지마 나도 교회 다녀봤어 그리고 이것 저것 봉사도 엄청 많이 해 봤어 별거 없어, 괜히 하지 말라는 것만 많고 교회 가지마’ 그 말을 들은 그분은 ‘그래 아이고 큰일 날 뻔했네 야 오늘 너 안 만났으면 큰일 날뻔했다 고마워 오늘 차 값은 내가 쏠게 다음 주 주일에 또 만나서 이야기나 하자’
친구B 와 헤어진 그 분은 친구A에게 전화합니다 “친구야 미안해 다음 주에 조카 결혼식을 깜박했네’
여기서 친구B라는 분은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다닌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하며 다녔기 때문입니다 이 분은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데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의 수인 7단계에 오르지 못하고 6단계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을 잘못 만난 분은 구원의 기회를 놓쳐습니다 이런 분이 보배로운 교회에 다니는 집사님을 만났어야 하는데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하는가 봅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베드로와 가롯 유다의 이야기 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그는 닭 울음 소리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베드로는 66단계에서 667로 간 사람입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고 닭 울음소리를 세 번들었으면 베드로도 667이 아닌 666단계로 갔을 것입니다 그렇게 됐으면 예수님의 12제자에서 탈락할 수도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 했습니다
닭은 어둠에서 새벽을 알려 주는 동물입니다
닭이 두 번 울었다는 것은 어둠에서 빛으로 두 번 지나 갔다는 뜻으로 생각해 봅니다
(창세기의 첫째 날 의 빛)
만약 베드로가 닭 울음소리를 세 번 들었다면 베드로도 가룟 유다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베드로는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닭 울음소리를 듣고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깨닫지 못하고 죽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1:9)
사도 바울은 최고의 가문 최고의 학문 최고의 율법으로 하나님께 또한 최고의 열심을 내던 자 였습니다
그가 아그립바 왕 앞에서 간증합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행26:8)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참 빛을 만난 후 어둠(666)의 세상에서 빛(777)의 세상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666)의 권세에서
하나님(777)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26:18)
예수님의 참 빛을 만나고 6단계(사람의 일, 자기 생각)의 삶에서 7단계(하나님의 일)의 삶으로 넘어간 대표적인 삶을 사신 분이 사도 바울 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한번 속지 두 번 속냐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사람이 한 번 속은 후 절대 다음에는 안속을 거라 굳게 다짐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는 것이 정신이 없다 보니 얼떨결에 한번을 또 속았습니다 두 번 속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이제는 자기가 속았던 비슷한 일만 보아도 깜짝 놀라고 미리 미리 단속을 합니다 그래서 발전되어 나온 속담이 솥 뚜껑 보고 놀란 가슴 자라보고 놀란다 라는 속담이 나온 것은 아닌지 생각 해봅니다 별걸 다 생각해봅니다
베드로가 두 번은 속았지만 세 번 속지 않고 예수님께 돌아 왔듯이
우리들도 미리 미리 준비하여 사단 마귀의 유혹이 있을 때 깜짝 놀랄 수 있는 영적인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6) 라의 삶은 아닌지
이 속담을 말씀 드리는 것은 삼 세번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세 번을 속지 않아도 한번에 큰 충격을 받으면 두번 세번 경험 하지 않아도 부정적으로 돌아선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사단 마귀의 수 육백육십육도 안식의 단계인 7단계에 오르지 못하고 평생 6단계에 신앙 생활에서 머무는 것을 육을 세 번 씀으로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계시록 8장에도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에서 화화화 라는 말씀을 사용한것처럼
저는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라는 이 말씀을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肉)육(肉)육(肉)이니라’
즉 ‘그 수 사람의 수니 육(육신의 일 생각하는 자) 육(육신의 일 생각하는 자) 육(육신의 일 생각하는 자)이니라’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일이 아닌 온통 육신의 일로 가득 찬 사람 즉 육적인 사람 이런 사람들을 보고 예수님은 사단 마귀라 표현하는 것이 아닌지
육백육십육(666)을 문자적으로 생각 해 보았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666)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777)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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