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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의 정의3 “설화 백우금관(百牛金冠)을 통해 본 숫자적 문자적”

    페이지 정보

    조회Hit 1,103회   작성일Date 14-04-24 08:44

    본문

    3.사단의정의 “설화 백우금관(百牛金冠)을 통해 본 숫자적 문자적”

     

    히스기야 왕 이야기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단의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늦어 졌습니다

    앞으로 두 번 정도 사단의 정의에 대한 글을 더 써야 합니다 끝까지 잘 봐주세요

    2년 전 가을 아버지께서 저희 아들들에게 삼척에 있는 조상의 묘에 함께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저희 6형제가 삼척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희 아버지께서 백우금관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던 생각이 나서

    이 이야기를 히스기야 왕에 대한 글에 적용해서 글을 쓰려고 생각 하다가 이 이야기가 사단의 정의에서 문자적 숫자적인 뜻 풀이에 적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어 히스기야 왕의 글에 쓰려고 생각했던 것을 접고 이 글에 적용하여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삼척에 가면 준경 묘와 영경 묘가 있습니다 이 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5대조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입니다 그런데 이성계의 4대조 할아버지인 목조(이안사)가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아버지 묘 자리를 쓰게 되는 설화로 내려오는 이야기 입니다이 이야기 속에 이성계의 고조 할아버지는 부친의 묘 자리를 찾아 다니다가 우연히 한 도승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 명당자리에 소 백마리를 잡아서 제사 지내고 관은 금으로 만들어 장사 지내면 후손 중에 왕이 나온 다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가난한 자신이 소 백 마리를 제물로 준비하여 제사 드린다는 것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더군다나 관을 금으로 만들어 아버지 상을 치른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 이었습니다 이렇게  한탄하다가 한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소 백() 마리는 흰소(白牛) () 마리로 대신하고

    금관은 귀리 짚이 황금색이니 이것으로 대신하면 될 것 같았다.

     

    흰 소를 한자로 쓰면 백우(白牛)이므로 숫자상 일백 백자와 발음이 통하게 되어 백우(百牛)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다음날 아침 처가에 간 이안사는 밭 갈이 할 일이 있다고 처가에 핑계를 대고 흰 소를 잠시만 빌려 달라고 하여 흰 소를 제물로 하여 부친을 장사 지냈다고 합니다

    그 후 도승의 예언대로 백우금관(百牛金冠)으로 부친(이양무)의 묘를 쓰고 나서

    5 162년 만에 조선을 창업한 태조(太祖)가 나왔답니다

    제가 굳이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계시록의 666이란 숫자를 숫자로 볼 것이냐 문자로 볼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666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설화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16:23)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13:18)

     

     

     

    짐승들은 한 번에 두 가지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만 보고 눈에 보이는 것 만을 생각합니다 사냥꾼이 꿩 사냥을 할 때 꿩을 보고 쫓아가면 꿩이 숨을 때 자기 머리만 숲에 감추고 꿩은 자기 몸 전체를 숨긴 줄 착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동네 아저씨가 꿩을 향해 총을 쏘았는데 꿩이 날아가더니(멀리 날지 못함) 풀 숲에 숨었는데 머리만 박고 몸통은 그대로 드러난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개도 도둑이 고기에 약을 묻혀 던져 주면 생각 없이 개는 넙죽 고기를 받아 먹고 죽으면 도둑놈은 도둑질을 합니다

    계시록에 짐승의 수는 곧 사람의 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도 하나님을 잊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은 없다 하고 자기 육신의 정욕을 위해 일할 때 그것은 곧 짐승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14:1-)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3:18)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짐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짐승인 것을 깨달은 자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회개하고 돌아온 짐승을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고 그 사람이 7단계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사람을 777, 안식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그들을 성경은 짐승이라 하고 666이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래 글은 심심하시면 읽어보시고 바쁘시면 안 읽으셔도 됩니다)

     

    태조 이성계의 조상

    이양무 목조(고조부) 익조(증조부) → 도조(조부) → 환조() → 이성계(태조)

     

    18세 이안사(목조:고조부))는 호걸풍으로 전주 관기 하나를 총애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주사가 전주 고을 안렴사로 부임하는 산성별감을

    접대하기 위해서 그 관기를 수청들게 하였다.

    평소 지주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안사는 대노 하였다.

    많은 기생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자신이 총애하는 기생을 수청들게 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크게 싸웠다.

    그러자 지주사는 안렴사와 의논하여 역적으로 음해하기 시작했다.

    그 구실은 전주이씨 3세 천상의 묘가 기린산 왕자봉 밑에 있는데

    후손 중에 왕이 나올 자리라는 소문과 이()씨가 왕이 된다는 목자왕기설(木子王氣說)이었다.

    이는 역적으로 몰기 위한 것으로 고려 조정에까지 알려지면 임금을 모독한 죄로

    멸문지화를 피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이안사는 병든 아버지를 업고 모든 식솔들을 거느리고 밤을 틈타 머나먼 강원도 삼척으로 도망을 쳤다.

    이때 이안사를 따르는 가구수가 180여 가구라고 했으니 인원수로는 1,000명이 넘는 대집단이었다.

    삼척시 미로면 활기동에서 자리를 잡고 산지 1년 만에 아버지(이양무) 상을 당하였다.

    이안사는 아버지 묘 자리를 구하려고 이산 저산 산등성이를 넘어 사방으로 헤매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마땅한 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마침 활기리 노동 산마루에 이르러 몹시 고단하여 나무 밑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이때 한 도승이 동자승과 함께 나타나 주위를 두루 살펴 인적이 없음을 확인한 뒤 한 곳을 가리키면서

    "대지(大地)로다 길지(吉地)로다"하는 것이었다.

    이안사가 나무 밑에 앉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도승은 동자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이곳이 제대로 발복하려면 개토제(開土祭)에 소 백()마리를 잡아서 제사를 지내야 하고,

    관을 금으로 만든 것을 싸서 장사를 지내야 한다.

    그러면 5대손 안에 왕자가 출생하여 기울어 가는 이 나라를 바로 잡고 창업 주가 될 것이다.

    또한 이 땅은 천하의 명당이니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 하는 것이었다.

    동자승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더 있다가 그들은 다른 곳으로 길을 떠났다.

    자신의 귀를 의심한 이안사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생각에 골몰하였으나

    가난한 살림살이에 소 백 마리를 어디서 구하며, 금으로 만든 관은 더욱이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부친의 묏자리를 명당에 쓰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형편상 어쩔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안사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궁여지책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렇다! 손바닥을 친 이안사는

    소 백() 마리는 흰소(白牛) () 마리로 대신하고 금관은 귀리 짚이 황금색이니 이것으로 대신하면 될 것 같았다.

    마침 처가에 흰 얼룩소가 있었는데,

    흰 소를 한자로 쓰면 백우(白牛)이므로 숫자상 일백 백자와 발음이 통하게 되어 백우(百牛)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다음날 아침 처가에 간 이안사는 밭갈이 할 일이 있는데 흰 소를 잠시만 빌려 달라고 하여

    소를 끌고 노동(盧洞) 산마루로 올라갔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무릅쓰고 소를 잡아서 제물로 사용하였다.

    부친을 넣을 관은 귀리짚으로 대신하였다. 같은 황금색이므로 금관과 의미가 통하기 때문이다.

    부친의 묏자리를 잡은 이안사는 삼척에서 자리를 차츰 잡고 살았다.

    그런데 자신과 갈등이 있었던 전주 지주사가 관동안렴사로 부임하여

    삼척으로 순시를 나온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에게 발각되는 날이면 죽음을 면치 못하므로 다시 짐을 꾸려 일족을 거느리고

    함길도(지금의 함경도) 덕원군 용주리로 도피하였다.

    무예가 뛰어난 그는 여진족의 천호(千戶) 벼슬을 하면서 차차 그 지방에서 기반을 닦기 시작했다.

    이안사의 아들 이행리(익조)와 손자 이춘(도조)

    대대로 원나라 관리를 지냈으며 춘의 아들 이자춘(환조)은 원의 총관부 쌍성의

    천호로 있으면서 공민왕의 반원정책을 도왔다.

    이자춘의 아들 성계는 1335년 화령부(지금의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났다.

    이자춘과 최한기의 딸 최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담대했으며 특히 궁술에 뛰어났다.

    이성계는 1356년 쌍성총관부 수복전쟁을 시작으로 1388년 위화도회군에 이르기까지

    30여 년을 전쟁터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맹장이었다.

    이 혁혁한 전공에 힘입어 그는 고려 조정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성계는 1362년 쌍성총관부를 재탈환하기 위해 침입한 나하추 부대를 격퇴시키면서

    장수로서의 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1388년 이성계는 위화도회군을 강행하여 고려 정권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

    1392년 조선을 건국하여 왕에 올랐다.

    도승의 예언대로 백우금관(百牛金冠)으로 이양무 묘를 쓰고 나서

    5 162년 만에 조선조 창업의 태조(太祖)가 된 것이다.

     

     

     

    <시간 있으시면 삼척에 있는 준경 묘에 한번 가보세요 엄청 아름다운 숲입니다

    그림으로 만 보던 아름다운 소나무를 직접보고 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그 숲의 나무를 관리하는 관리까지 있었답니다 나무 하나라도 없으면 벌을 받았답니다

    그 숲의 나무는 한양에서 궁궐을 짓거나 궁궐을 보수하는데 쓰는 소나무였답니다

    그 숲이 예전에 사단 법인 생명의 숲 국민운동이 주관하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할 정도로 아름다운 숲입니다 저도 사실 처음에 아버지께서 그곳에 가자 하실 때 가고 싶지 않았는데 그곳에 가서 깜짝 놀았습니다 그렇게 잘 생긴 소나무는 내 생전에 처음 보았습니다 아버지를 따라가길 잘 했다고 생각 했습니다 한번 더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