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산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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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12-06-10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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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시간을 내어 아내와 함께 청명산에 올랐다.
산이라고 해야 고작 해발 260m 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곳을 굳이 산이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산! 이라고 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일상을 벗어나 자유로움을 누린다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지역
주민들에게는 꽤나 사랑을 받고 있는 작은 동산이다.
휴일에는 가족들의 나들길일 뿐 아니라 평일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
어떤 이는 설악산 대청봉을 등반하는 차림으로 입산하고 있다. 알록 달록 잘 차려 입은 등산복에
비싸 보이는 등산화, 등에는 무얼 담았는지 두툼한 등산백이 몸에 착 달라 붙도록 끄나풀을 조여매고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모자 쓰고, 선글라스 끼고, 괴상 하게 생긴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양손에는
등산용 장갑을 끼고 스틱 두 개를 들었다.
이 정도 차림이면 등산학과에서는 A+학점은 따 놓은 당상이겠다. 이에 비해 우리 부부는 이런 등산객이
민망할 정도로 평상복 차림이다. 편한 바지에 티셔츠 하나 걸치고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했으니 말이다.
어느 덧 녹음이 짙어지고 있다. 나무 손이 햇빛을 가려 그늘을 제공해 주고 듬성 듬성 기둥사이로
오솔길을 따라 양쪽에서 자라나고 있는 나뭇가지들이 숲속 터널을 만들어 놓고 있다.
숲은 \'자연 속의 종합병원\'이라고 불린다.
독일의 사상가 칸트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숲속을 즐겼다고 한다.
소나무 숲 1㏊(약 3천평)에선 44명이 1년간 마실 수 있는 산소가 나온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산에 오면 3가지 선물을 얻게 된다. 산소와 피톤치드와 음이온이다. 이 세 가지는 사람들의 피부를 통해
몸에 쌓인 노폐물이 잘 빠져나가며, 피부 자극으로 혈액순환을 좋아지게 하므로 건강하게 만든다.
산소는 앉아 있는 손님에겐 인색하여 분당 3백㎖쯤 제공하지만 걷는 손님에게는 그 두 배 이상(7백~8백㎖)
아낌없이 선물한다니 숲속 길을 많이 걸어보자.
아내는 수술 이후 건강 회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지만 때때로 밀려오는 병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가 보다.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3개월마다 체크하는 검진에도 별 문제가 없단다.
그러면 이젠 질병에 대한 괜한 걱정을 훌훌 털어 버리고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생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런 생각까지도 아내는 서운한가 보다.
‘당신은 나를 몰라’ 이 한마디 속에 ‘당신이 어찌 내 속 마음을 알겠는가? 아니,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게 당연하지’ 라며 나에 대한 기대심리를 내려놓는 것 같다.
요즘은 아내 눈치보는 게 늘었다. 얼굴 표정이 어떠한지, 그가 하는 말속에 어떤 의미가 숨겨있는지,
어떻게 하면 아내의 마음을 기쁘게, 또 편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눈치를 본다. 육체적인 무리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함이 질병을 예방하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아, 산 공기가 참 맑다. 청명산이라는 이름값을 하는 것인가?
이름 모를 산새들이 우리의 데이트를 환영해 주나보다.
수고롭게 들고 온 물병 뚜껑을 열어 아내에게 건네준다.
‘당신 먼저’ ‘아니, 당신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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