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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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권사님의 어머니께서 쓰러지신 후 몇 달 동안 병원에서 치료 중임에도 불구하고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
연초에 전 교인 대 심방을 선포하고 나서 심방에 전력질주를 하고 보니 지방까지 내려갈 짬이 나질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권사님은 한번 하기도 벅차하는 총 여전도회장을 자청하여 두 번씩이나 십자가를 메고 몸을 불사르는 충성된 일군이다. 집이 멀어 자동차로 40분은 달려야 하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보다 교회에 더 많이 머물러 있는 분이기에 그 미안함은 더 컸다. 하여 더위 핑계로 한산해진 틈을 타 병원 심방 날짜를 잡았다. 늘 ‘괜찮아요, 목사님 바쁘시잖아요’ 그러면서 이해해 주셨던 분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말은 그랬지만 속으로는 서운했나 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권사님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시간이 되어 동행할 권사님들과 함께 대전에 있는 모 병원에 들러 휠체어를 의지하여 나오신 어머니를 뵈었다. 젊었을 때는 여장군이라는 별명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반신불수가 되어 대화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딸은 알아보시고 뭔가 말씀을 하시려 한다.
그 눈빛 속에는 딸이 태어날 때부터 성장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생을 꿰고 계시는 듯 빛이 난다. 일행을 보는 눈과 딸을 보시는 눈빛이 다르다. 그게 끊을 수 없는 모정이리라. 손을 잡고 기도해 드리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평택으로 이사하여 식당 사업하고 있는 집사님 댁에 들러 함께 기도하고 식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멀리서 바쁘게 생활하고 있지만 늘 본 교회를 잊지 못하여 하는 집사님 댁에도 이 날에야 처음 방문하고 보니 또 미안함이 앞선다. 몇 년 전 이사하면서부터 ‘목사님 꼭 한번 오셔서 예배드려 주세요’ 라고 하였는데 이 날에야 비로소 찾게 되었다. 저녁 시간에 맞춰 들이닥치는 손님들 때문에 얘기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눈인사로 서운함을 떨쳐내야만 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이번에는 안중에 계시는 도 권사님 어머니 병원에 방문을 하였다.
이틀 전 아주대 병원 응급실에서 뵐 때는 며칠 넘기기 힘들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은 의식이 많이 회복되어 나를 알아보시는 것 같다. 몇 마디 짧은 대화를 통해 ‘예수님을 믿습니다. 아멘’을 따라 하시는 모습에서 실낱같은 구원의 손길을 잡게 하시는 은혜가 감사하였다. 노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는 자녀들의 마음은 늘 불안하다.
지방으로 돌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내는 연신 통화중이다. 사실은 오늘 장인어른이 중병을 수술하는 날이다. 평소 몸이 약해 시골 병원을 의지하여 신세를 자주 졌는데 그 사이 병을 키웠나 보다. 좀 더 일찍 큰 병원에서 검사하였더라면 초기에 치료가 되었을 텐데 시골에서 어르신 두 분만 생활하시고 보니 그럭저럭하는 사이에 병이 커진 것이다. 어느 가정이나 그러하듯 본인에게는 중병을 알리지 않기 때문에 그리 큰 병이라고는 생각지 않으신다. ‘큰 병원에 오셨으니 이제 잘 될 것입니다’ 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속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아버님 수술하시는 날, 이미 심방 날짜를 잡아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내색하지 않고 모든 심방을 다 마쳤다. 차 안에서 이동하는 순간순간 아내는 병원에 있는 동생과 통화를 한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속내를 아는 내가 볼 때 얼굴이 밝지 못하다. 다음날, 새벽기도 마치고 중환자실로 가려고 보니 또 선약된 심방 시간과 겹쳐 있다. (중환자실은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 아내 입장에서 보면 사위의 효심이 형편없어 보이는 듯 하여 늘 서운한 마음인데 이번에도 만회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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