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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해도 될까? 하지 말까?’
똑같은 물음을 여러 번 반복하고 있는 이유는 하고도 싶고, 하자니 어색할 것 같기 때문에 자꾸 물어보는 것이다. 아내도 처음에는 진지하게 ‘한번 해 보세요’라고 대답을 해 주더니 나중에는 잦은 질문에 짜증이 나는지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세요, 목사님~~’ 그런다.
가정에서 아내가 ‘목사님~~’하고 말을 할 때는 긴장을 해야 한다. 뭔가 꼬인데가 있다는 사인이기 때문이다.
본디 내 성격을 말하자면 다중 인격처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경우가 많다.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이 혼란스럽겠다. 뭔가 한다고 했으면 하든지, 안한다고 했으면 끝까지 안 하든지 해야 하는데 한다고 했다가 안하고, 안한다고 공표했다가 은근 슬쩍 눈치보며 꼼지락거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 때가 종종 있다.
사연인즉 이렇다.
올 여름은 땀과의 전쟁인가 보다.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는 벌써 이마에서, 뒷통수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등줄기에서도 척추골을 타고 땀방울이 또르르 내려가다 팬티 고무줄에 걸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다. 심지어는 새벽기도 시간에도 땀이 흐른다.
이처럼 땀이 많다보니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 머리 스타일이다. 체면상 앞머리를 위로 올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시원하게 보이기를 바라는데 땀이 많다보니 금세 머리카락이 흘러 내려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언제 부터인가 앞머리만 퍼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마침 미장원을 운영하는 집사님과 대화하는 중에 그분도 가볍게 ‘목사님, 시간 내서 오세요, 멋지게 해 드릴께요’라고 한다.
용기를 내어 미장원에 들렀다. 그 날은 마침 아침부터 소나기가 내린 탓인지 손님이 한명도 없어 다행이다 싶었다. 미장원은 예배드리기 위해 여러 번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머리를 하기 위해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마주세운 거울을 보고 있다. 머리를 말아 올려서 고무줄로 묶고 비닐을 씌우고 난 뒤에는 퍼머액을 말리기 위해 가열 기계가 머리 위에서 빙글 빙글 돌아간다. 기다리는 동안 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웃기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지랖이 좁아 미장원에서는 커트도 해 본적이 없는 내가 지금 퍼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제 정신인가? 괜히 왔나? 나중에 빠글빠글한 헤어 스타일을 보고 성도들이 뭐라고 할까? 아냐 괜찮을 거야, 머리카락이 흘러 내려서 신경 쓰이는 것보다는 항상 이마를 단정하게 하고 다니는 것이 훨씬 나을거야.>
기계가 멈출 때까지 혼자서 말을 주고받으며 어색함을 달래고 있었다
머리를 만지던 집사님은 ‘목사님, 이 모습 폰카로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릴까요?’ 놀려댄다. 드디어 시간이 되어 풀고 씻고 헤어드라이로 머리를 말렸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내가 생각했던 퍼머가 아니다. 항상 머리카락 한 올까지라도 단정함을 추구했던 나인데 이건 이리 저리 산발되어 마치 거치른 뒷동산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질 않은가?
집사님은 머리 잘 나왔다며 시원한 차를 대접하는데 내 속은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아, 이제 이를 어쩌면 좋은가? 다시 풀어달랠 수도 없고, 하는 수 없다. 이럴 때는
최대한 뻔뻔해지는 거다. 손은 자꾸 머리위로 올라가지만 위풍당당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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