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권사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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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기만 해도 그리 좋을까?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에 해맑은 미소를 띠며 속속 교회 마당에 도착하는 권사님들.
시청률 40%를 육박했던 ‘엄마가 뿔났다’에 한 표 던지며 자유를 외쳤던 이들이기에 오늘을 무척이나 기다렸던 모양이다.
집? 남편? 아이들? 교회 도착하는 순간 다 잊어버린 것 같다.
하루 동안 집을 떠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묵혀있던 스트레스가 날아간 것처럼 얼굴이 밝다. 3시간 동안 달려가는 승합차 안은 동요, 민요, 가요, 찬양, 그리고 깔깔대는 온갖 수더분한 얘기들로 가득 차 있어 봄의 열기를 더 달군다.
드디어 도착한 남원시 인월면. 허기진 뱃속에 비빔밥 한 그릇 비벼 넣고 나니 파란 하늘이 보인다. 평소 걷기에 자신 없는 이와 산행이 불편한 이들은 먼저 승합차를 타고 도착 지점으로 이동하여 나물을 캐기로 하고, 행군에 자신 있는 이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둘레길 시작점으로 향한다.
지금부터 오늘 도착 지점까지는 약 8km. 내를 건너고 논둑을 지나 산을 넘어가는 길이다. 인월천을 따라 가는 동안 왼쪽 냇가에서는 ‘혹시 오늘 재수가 좋아 먹잇감하나 건지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모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물속을 헤집는 백로 한 쌍이 있고, 오른 쪽으로는 덜덜 거리는 경운기를 몰며 봄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의 모습도 보인다.
땡볕 아래 밀짚모자 눌러쓰고 일하는 농부 옆으로 재잘거리며 둘레길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우리도 평소에는 열심히 일하며 산답니다’라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걷는다. 논둑길을 지나 마을 고샅길로 접어드니 주민들이 볼멘소리를 한다.
‘이 놈의 곳에 둘레길인가 뭔가 만들어 놓더니 오는 사람마다 약초를 다 캐가니 징혀서 못 살것어’ 캐간 사람 따로 있고, 야단맞는 사람 따로 있다.
처음 방문한 우리는 괜한 소리를 듣고 나니 잠시 기분이 상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마음으로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비탈 목 좋은 곳에 포장을 치고 식혜, 오미자, 막걸리를 파는 부부가 호객행위를 한다.
<1박2일 강호동 은지원 다녀간 곳>이라는 플래카드를 내 걸고 마치 통행세를 내지 않으면 지나 갈수 없다는 듯 으름장을 놓는다. 그렇잖아도 갈증 나던 참인데 잘 됐다 싶어 흐르는 골짜기 물에 담가둔 오미자 주스 한잔을 벌컥 벌컥 마시니 피로가 싹 풀리는 듯하다.
행군은 계속되어 산을 넘고 또 넘고 큰 산을 질러가야만 했다.
이는 둘레길이 아니라 깔크막길이다. 말이 8km이지 산 비탈길을 돌고
돌아가는 길은 훨씬 더 먼 것 같다. 두어 개 산봉우리를 지나고 나니 비로소 듬성듬성 시골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래쪽 마을 배경으로 사진 한 컷 찍고 예약했던 ‘태양초 민박집’으로 향했다
지리산 둘레길이 생기면서 가장 큰 변화는 시골 마을 전체가 민박집으로 바꿔졌다는 것이다. 평소 농사만 짓고 살았던 이들 집에 도시민들이 밀려들면서 농사가 부업이 되고 민박 운영이 주업이 되었다. 우리를 맞이한 분은 이제 60이 갓 넘은 아주머니로 얼마나 식사 준비를 많이 하셨는지 약 20여 가지의 반찬에 토종닭을 삶고 계셨다.
사람 만나는 것이 좋으신지 말끝에서, 손끝에서 시골 정이 물씬 풍겨난다.
그 날 저녁, 한데 모인 이들은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교회 권사의 모습으로 모드가 바뀐다. 어떻게 하면 교회를 더 아름답게 섬길까, 어떻게 하면 권사로서의 직임에 부끄럽지 않은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밤늦은 시간까지 토론은 계속된다.
밤새, 그리고 아침까지 내리고 있는 비 덕분에 오늘 일정이 완전히 엉키고 말았다.
계획대로라면 다시 12km를 더 걸어야 하는데 전면 수정하여 남원 춘향골로
기수를 돌렸다. 강순임 권사님의 동생 부부가 마중 나와 남원 추어탕 원조 집에서
대접을 잘 받았다(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올라오는 길에 무작정 충남 논산군청에 전화를 걸어 찾아 간 곳은 논산 딸기밭 체험장이었다. 비가 오는 월요일이기에 손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20여명이 몰려드니 주인이 반색을 하며 딸기 맛을 보라면서 바가지 채 건넨다. 딸기, 딸기 쨈, 건빵을 쨈에 찍어 먹고도 배가 덜 찼는지 하우스 안에까지 들어가서 한 움큼씩 따지고 나온다.
점심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렇게들 먹을까? 아줌마 배는 특별하나보다. 끝없이 들어간다. 수원으로 올라오는 길, 잠시 여정을 마무리 하는 듯 두런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백미러로 보니 이미 곯아 떨어졌다. 그럴 만도 하지, 밤새 이야기하느라 잠을 설쳤을 것이고, 배는 부르겠다, 몸은 피곤하겠다, 장사라도 견디겠나?
운전을 하는 나도 눈이 반쯤 감긴다. 찬양을 들어도, 허벅지를 꼬집어도, 찬물을 마셔도 쏟아지는 잠을 쫓을 길이 없다. 화장실 핑계 삼아 휴게소에 들러 찬물로 잠을 내 쫓는다.
1박 2일, 평소 교회에서 충성하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동행한 길은 몸으로는 피곤하였지만 마음으로는 한없이 기쁘다. 이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더욱 아름답게 발전하기를 기도하면서 무사히 운전을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