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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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인수인계하는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서로 마주보고 ‘힘내라,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도 할 시간이 없었다. 다만 얼굴을 부벼대며 ‘사랑해’라는 말에 아내는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 채 밀려들어 갔다. 휠체어를 타고 링거주사 줄을 매단 채 수술실에 들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고 돌아설 수가 없었다.
대기실은 분주했다. 꼭두 아침(7시)부터 무슨 수술 환자가 저리도 많은가? 푸른 제복을 입은 준비 팀의 얼굴은 표정이 없다. 늘 하던 일, 자기하고는 상관없는 일, 하긴 환자나 가족의 마음을 모두 아우르면서 일을 한다면 감정 주머니가 터져 버리겠지.
대기실 벽을 타고 일렬종대로 휠체어에 앉아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할까? 아니면 오히려 단순해질까? 당사자가 아니면 어찌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모든 의지와 감정마저도 무시당한 채 마치 저승사자에게 끌려가듯 아내는 수술실로 사라졌다. 이제 잠시 후면 마취가 시작되겠지, 차라리 그게 낫겠다. 생전 처음 들어가 보는 수술실에 정신이 말똥말똥한 채 그 분위기를 느낀다면 강심장이 아닌 한 그 고통이 더욱 크리라.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내 양옆으로 똑같은 모습의 환자들이 계속 밀려들어가고 있다.
그 시간부터 전광판에는 ‘000환자의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000환자의 수술이 끝났습니다’ ‘000환자는 회복실로 이동하였습니다. 보호자는 대기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자막이 환자의 상태를 알려 준다.
3시간 반 후 아내는 회복실에서 나왔다. 이제 막 마취에서 깨어나는 듯 고통스런 소리가 마음을 찢어 놓는다. 환자가 잠들면 안 되기 때문에 계속 말을 시키고 심호흡을 시키면서 정신이 들게 해야 한다는 간호사의 명에 따라 환자를 자극하지만 순간순간 정신을 놓으므로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날 때 별의 별 소리를 다 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내심 긴장이 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그 상황에서도 ‘기도해 주세요’라고 한다. 함께 시간을 보냈던 분들이 ‘역시 사모님이시네요’라며 환자를 칭찬한다.
부산했던 시간이 흘러가고 주변이 고요해 지는 시간이 되었다. 링거액, 무통주사, 소변줄, 피 주머니 줄, 호흡과 맥박 체크하는 기계, 다리에는 혈전 방지 주머니 등등 대여섯 개의 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중환자임을 표시해 주고 있다. 힘없이 늘어뜨려진 아내의 손을 잡고 있으니 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스므 살 꽃다운 나이에 친구로 만나 7년을 사귀다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지방 신학교를 졸업하고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결혼하고 다시 장신대 학부 1학년으로 입학을 했다. 사랑하면 결혼하는 것이고, 결혼하면 저절로 살아지는 것으로 착각했다. 아내의 고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작은 회사에 들어갔지만 심한 입덧 때문에 달포를 넘기지 못하고 나왔다. 가정 부업이 시작되었다. 앙고라 셔츠에 보석 다는 일, 전선에 작은 줄 연결하는 일, 새벽에 일어나 아파트 주차장에서 세차 하는 일 등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도 불평한마디 하지 않았던 아내였다. 미장원 갈 돈이 없다보니 그때부터 신문지에 구멍내어 뒤집어쓰고 집에서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주기 시작한 게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까지 이어졌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음에도 목회자의 아내로 생활하면서 근검절약이 몸에 배였다. 세상 말로 이제 먹고 살만하고 미장원 갈만큼 여유가 생겼는데 덜컥 질병에 발목이 잡혀 드러누워 있는 아내를 보니 한없이 미안해진다. ‘재미없는 사람, 놀 줄도 모르는 사람, 교회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린다. 아내의 손을 쓰다듬으며 다짐해 본다. ‘여보, 당신 일어나면 재미있게 살아보자. 그 동안 못해 줬던 것 다 해줄게’ 아내는 말없이 씩- 웃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