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의(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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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제 생각에 이것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서 죄송하고 또 죄송
하다며 신앙생활이 혼란스럽다고 메일이 왔다. 그 글을 대하면서 틀린
말이 아니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자기 나름대로의 잣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보수적인 교단에서 신앙이 성장하게 되면 진보적인 성향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 반대로 진보적인 교단에서 신앙을 배우면 보수적인 교회에서의 생활은 답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다 같은 교회라고 하지만 어느 교단이냐에 따라서 신앙의 색깔이 달라지고, 또 어떤 목사에게서 배웠느냐에 따라 신앙의 양태가 구분된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장로교단에서 성장했으면 순복음식의 집회를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시끄러운 시장통 같다고 표현한다. 그런가 하면 순복음 교단의 영향을 받고 신앙을 배운 사람은 전통적인 장로교회로 들어오면 교회 분위기가 공동묘지처럼 너무 잠잠하여 적응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를 서로 이해하지 못하면 곧이어 옛 교회로 돌아가게 된다.
사람에게는 환경이 참 중요하다.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길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도 그래서 중요하게 여긴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성장하면서 습득된 지식이 곧 자기 삶의 잣대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기 기질, 성격, 지식, 판단력, 경험과 생각까지 어우러져서 어떤 사물을 대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견해차가 클 수밖에 없다. 이것을 나는 ‘자기 의(義)’라고 표현하고, 심리학에서는 ‘스키마’(schema)라고 표현한다. 자기 기준이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 의(義)’를 가지고 있다. 자기 생각에는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렇게 이렇게 해야만 된다고 하는 자기 기준에 의한 판단이다. 분석해 보면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맞는 말이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자기 의(義)’를 겉으로 드러내어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순간부터는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상대방도 똑같은 자기 나름대로의 ‘자기 의(義)’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둘의 견해가 엇비슷하다면 서로 간에 맞장구를 치겠지만, 안타깝게도 상반된 ‘자기 의(義)’를 가지고 있다면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가장 가까운 부부간에도 서로 간에 ‘자기 의(義)’를 내세우기만하면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만약 이런 사태가 이웃 간에 발생한다면 다툼과 결별이라는 결과를 불러 온다. 이게 이념으로 발전한다면 국가 간에는 전쟁이 날수도 있는 문제이다.
‘자기 의(義)’는 소중한 것이지만 이것이 자기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을 향하여 강한 채찍질을 한다면 겸손한 사람이 되겠으나 이 ‘자기 의(義)’를 타인에게 적용하려 든다면 교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갈등과 마찰이 발생하게 된다. 내 생각과 다르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 줄줄 아는 것이 겸손한 자세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 의(義)를 자기에게 적용할 줄 아는 겸손한 자를 사랑하신다. 우리 모두에게는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도 있고 약점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약점을 감춰 주시고 장점을 보시고 우리를 사용하신다. 우리 자신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죄와 실수와 약점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을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주시고 우리에게 있는 아주 작은 장점 하나를 보시고 사용해 주신다. 이것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타인의 약점을 보고 판단하면서 장점을 날려버린다. 여기에는 평화도 없고 발전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 의(義)를 자기 안에 가둬야 하고, 타인의 장점을 보고 칭찬해 줘야 한다. 여기에 진정한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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