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안마 선교 보고 ♥
페이지 정보
본문
3년 만에 방문한 미얀마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선 공항 청사가 깨끗해졌으며 오염으로 찌들었던 하늘이 청명하게 개어 있었다.
도시 거리는 정비가 잘 되어 있으며 매캐했던 대기 오염도 한결 맑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공항 청사 직원들의 태도로 바꿔졌다. 3년 전 많은 물품을 가지고 들어가면서 세관에 걸렸다. 가방 안에는 교회와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나눠줄 각종 학용품과 과자 및 선물이 잔뜩 들어 있었다. 직원은 가방을 풀어 헤치더니 그 중 몇 개 물건을 반 강제로 빼어 가더니 통과를 시켜주었다. 이번에도 틀림없이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아무 제재 없이 통과시켜 주는 것이다. 물건을 옮길 때 벌떼처럼 달려들어 가방하나 들어주고 돈을 요구했던 볼썽사나운 장면도 사라졌다.
이 나라가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며 도대체 앞날이 보이지 않았던 미얀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멋진 나라로 변모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짧은 기간에 어떻게 이처럼 많이 변했을까? 우리가 놀라고 있는 것이다. 1813년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전체 인구 약 5000만 명 중 8%인 400만 명이 기독교인으로 집계되고 있다.
1995년부터 시작된 한인 선교사 활동은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미얀마 사회곳곳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미얀마의 변화 중심축에는 선교사들의 헌신이 숨겨져 있다.
우리 교회에서 후원하고 있는 최000 선교사가 1995년에 파송되었으니 한국인 선교사로서는 초기인 셈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오직 수지침을 배운 기술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열정이 그를 미얀마로 향하게 한 것이다. 강한 불교에 짓눌려 어둡고 답답한 환경 속에 있던 그 나라에 들어가서 교회를 세우고 고아원을 설립하여 많은 아이들을 훌륭하게 잘 키워내고 있다. 우리 교회에서 적극 지원하여 땅을 확보하고 교회 건물과 고아원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는 양곤 시내에 약 500평의 땅을 매입하여 4층짜리 기술학교를 세운 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바이올린, 첼로, 플릇,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으며 장차 봉제 기술과 한글학교를 운영하면서 복음을 전할 계획을 하고 있다. 건축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그녀가 외국에서 맨 땅위에 이 큰 건물을 짓기까지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지 설명하는 중간 중간 가슴에 맺힌 한이 피눈물처럼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고통이 컸으면 잠적해 버리고 싶고, 심지어는 4층에서 뛰어 내려버릴까하는 생각까지 했다 한다.
하지만 그 험난한 과정을 극복하고 등기를 완료한 후 드디어 봉헌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봉헌예배는 아주 조촐하게 드려졌다. 기숙하고 있는 학생 15명, 우리교회 6명, 성지교회 3명, 현지인 목사 및 초청인 6명이 전부였다. 비록 초라한 예배였지만 예배 시간 내내 마음이 뜨거움을 품게 되었다. 지금은 작은 자의 모습이지만 장차 이 건물을 통하여 역사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클까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니 가슴이 벅차 오른다.
‘시미나창’-네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되리라는 말씀이 심비에 새겨진다.
100년전 우리나라에 발을 디뎠던 선교사들은 ‘하나님, 이 나라는 앞날이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절규했다. 하지만 그들의 헌신과 땀과 순교의 피가 오늘 우리나라를 이렇게 복되게 한 것처럼 미얀마 땅에서도 그 은혜와 축복이 임하리라 기대한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 이전글♥ 사랑하는 아들 ♥ 11.12.17
- 다음글♥‘아딸 떡볶이’의 성공 이야기 ♥ 11.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