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면 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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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12-08-12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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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기업체 에서 ‘집 떠나면 고생’이니 집에서 편하게 TV나
보면서 쉬어라는 광고를 내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등장했던 CF 모델중 한 명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악인이었다. 히말라야 산을 오른다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런 일인가? 그 산을 배경으로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유명 산악인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 때문에 전 산악인들로부터 욕을 먹었다는 후문이 있었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집 떠나면 고생’ 말은
맞지만 그 광고는 웃기지도 않는 카피(copy)이다.
산악인이 히말라야 산을 정복하는 것을 고생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격미달이다. 물론 광고이니 웃자고 하는
내용인 것은 다 아는 얘기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산에 오르는 이들이 많다. 모두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르내린다. 하지만 그들을 보면서 그렇게 고생할 껄 뭐하러 산에 갔느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무더위를 극복하고 땀을 흘리면서 하산하는 이들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반년 동안 수고했던 묵은 스트레스를 씻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후반기를 시작하고자 하는 상큼한 마음으로 휴가를 떠난다.
하지만 이런 건설적인 마음은 출발부터 삐거덕거리기
시작한다.
도로마다 피서지를 향하는 차량 행렬이 명절
못지않다.
찜통 더위에 짜증날 정도로 꽉 막혀있는 정체
현상 때문이다. 아무래도 휴가 기간이
한 두 주간에 몰리다 보니 어쩌면 예견된 현상일 수도 있다.
휴가란 말 그대로 한가하게 쉬는 것인데 이는
오히려 한숨만 쉬는 꼴이 되고 만다.
우리 부부도 그 대열에 끼여 휴가를 보내기
위해 여수 엑스포로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방문한 날자 기간은 여수 시민 무료 초청의 날로서 그
날 무려 27만 명이 입장을 했다 한다.
얼마나 사람이 많이 몰려들었는지 삼복더위에
땡볕아래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가 겨우 한 코너를 보고 난 후 집에 남아
있는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딸아, 네가 부럽다. 아빠 엄마는 죽을 고생을
하고 있다’고.
딸로부터 답신이 왔다. ‘그러게, 딸을 떼어 놓고 가실 때부터
알아 봤용’
밤 10시 폐장 시간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인파로 인해 차를 탈수 없어 고생, 에어컨 시설이 제대로 안되어 있는 민박집, 어~ 휴
이래 저래 고생만 하다 민박집 주인의 추천에
따라 방향을 돌려 다음날은 거문도행 쾌속선을 탔다. 여수항에서 114.7km 떨어져 있는 거리를 2시간에 주파하는 쾌속선은 손님들의 배 멀미 상황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냅다 파도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배를 탄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출발시간부터 속이 울렁거리더니
급기야 창자까지 기어 나오도록 쏟아내기 시작했다. 둘은 힘이 다 빠져 서로
바라볼 힘도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녹초가 된 모습으로 거문도 항에 도착하였다.
이대로는 도저히 구경할 수 없어 항구에 인접해
있는 민박집에 들러 한 두시간만 누었다 가겠노라고 사정을 하고 쓰러져 누웠다. 지쳐 잠들어 있는데 주인이 하는 말. ‘태풍 경보가 내렸으니 지금 빨리 여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토요일쯤에나 해제 될지 안될지 모르니 빨리 결정하라고 다그친다. 그것도 지금 여수로 돌아가는 배는 없고, 녹동으로
가는 철선이 있으니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한다.
‘아이고 이게 왠 날
벼락인가? 배 멀미로 두 시간 고생해서 이제 겨우 몸을 추스르고 있는데
다시 돌아가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래도 어찌할 것인가? 하는 수 없이 배에 올랐는데 이건 또 왠 일인가? 태풍
경보를 듣고 몰려온 관광객들로 인해 엉덩이 하나 붙이고 앉을 자리가 전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벌러덩 드러누워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아니, 앉을 자리도 없는데 드러누워서 잠자는 척 하다니’ 괘씸한 생각이
들어 큰 소리로 ‘여보세요. 3시간 동안이나 가야 하는데 앉을 자리도 없어 고생하는데
좀 일어나서 함께 앉아 가면 안되겠습니까?’ 라고 고함을 지르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는데
시간이 지나니 바닷바람 쐬러 나가는 사람,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인해 자리 여유가 생겼다. 그 틈에 얼른 달려가 비집고
들어가 엉덩이를 붙였다. 녹동에
도착하여 여수까지 다시 2시간 반을
직행 버스를 타고 가야만 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유명하다는 아구찜 식당을 소개 받아 갔더니 오늘
물량이 동이 났기 때문에 장사를 안한다며 시청 앞에 맛있는 집이 있다고 소개해 준다.
다시 운전을 하여 그 집을 찾아 갔는데 그
집도 역시 장사를 안하는 것이다.
길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겨우 여수에서
유명하다는 ‘서대회’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집에 돌아오니 만사가 귀찮아졌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휴가였다.
오늘 글은 고생한 얘기만 하고 아내의 등쌀은
생략하기로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