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울린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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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12-11-2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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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왔습니다’
발신지를 보니 국내인데 보낸 사람은 아들이름이다.
아들 이름이 눈에 크게 띈다. 포장지를 뜯어보니 그 안에 예쁜 카드와 함께
아들 편지가 들어있다. ‘아빠 엄마, 아들 상락이에요……. 학교 공부 끝나면
집사님 가게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돈이 좀 생겼습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아빠 엄마에게 선물을 사드리기로 결심하고 작은 물건을 보내
드립니다’는 내용이다.
상자 안에는 회색 가디건과 코치 가방하나가 얌전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 잡고 있다.
가디건은 얼마 전 마음에 꼭 드는 걸 구입하여 한번 입고 선교지 가는 길에 분실하고 말았다.
후진국 공항에서 누군가 가방 안에 넣어둔 걸 빼내간 것이다.
속이 상했지만 선교지에 가려면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바꿨다.
이후 어느 매장을 가도 그런 가디건을 구입할 수가 없었는데 아들이 보낸 옷을 보니
내가 찾고 있는 바로 그 옷인 것이다.
멀리 있는 아들이 어떻게 아빠의 마음을 알아서 이처럼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샀을까?
마음이 울컥해 진다.
코치백은 엄마도 여성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구입한 것 같다.
이후 아내는 외출할 때마다 그 백을 들고 다니면서 아들 자랑을 한다.
그 물건을 보면서 눈물이 쏟아진 이유는 생활비를 넉넉하게 보내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다.
제 생활비도 부족할 텐데 고생하여 번 그걸 쪼개서 아빠 엄마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아들의 마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설교 시간에 입고 자랑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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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내 아버지 어머니에게 효도를 했나? 자책감이 든다.
마디마디 잔뼈가 굵어지고, 얼굴에는 굵은 주름살이 우동 국수 가락처럼 되도록 평생을 농사짓고
나를 기르신 부모님이신데 제대로 효도 한번 하지 못한 채 이별을 하고 말았다.
군 제대하고 곧 바로 결혼하여 서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우리 집에 부모님은 딱 하루 밤
주무시고 가시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단칸방이었으니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막내아들 결혼시켜 놓으시고 그래도 한번쯤 사는 걸 보고 싶으셔서 노구를 끌고 오셨다가
‘잘 사는 것 봤으니 됐다’ 하시고선 다음날 내려가시고 말았다.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집에 모시고 대접해 드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지금까지 살아 계시다면 넓은 집에 오랫동안 모시고 살면서, 시간을 내어 고급 승용차에
모시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맛있는 것 충분히 대접해 드릴 수 있을 텐데........
이 글을 쓰다 말고 시골에 사시는 장인어른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당신들 걱정보다 자식
걱정을 먼저 하신다. 큰 일하는데 몸조심하라며 일러대신다.
팔순이 다 되신 두 분은 60여년을 서로 그렇게 의지하시면서 시골집에 살고 계신다.
아버님은 몸이 약하셔서 거동이 불편하시고, 어머님은 머리가 노쇠하여 기억력이 약하시다.
서로 탓도 많으시고 불편한 것도 많으시지만 그래도 두 분이 함께 계시는 게 가장 편하신가보다.
서로 간에 잠시도 떨어져 지내려고 하지 않으신다. 60여 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으로 똘똘 뭉쳐있나 보다.
벌써 여기 저기 폭설이 내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조석으로 찬바람이 옷깃을 움츠리게 한다.
오늘 내일새 눈이라도 내릴 것 같다.
이번 겨울에는 모시고 올라와서 며칠만이라도 이것저것 맛있는 것을 대접해 드려야겠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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