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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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데리고 살았던 의붓딸을 폭행하여 마침내 숨지게
한 사건이 전국을 들썩이고 있습니다. 울산에서, 경북 칠곡에서,
인천에서, 미국으로 입양간 아이의 죽음까지, 아동들이 폭행을
당하다 못해 급기야 사망에 이르는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대부분 10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입니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아름다운 새싹으로 자라나야 할 나이에
이유도 없이 두들겨 맞아야 하고, 뼈가 부러지고, 화상을 입고, 머리카락이 쥐어 뜯겨지는 고통의 시간이 모자라 이제는 무참히 짓밟혀 죽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두 아이를 키워 본 부모로서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 매를 드는 경우가 있고, 어떤 날은 아이 손바닥 때리고 내 손바닥을 때려가며 훈육을 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속을 썩일 때는 기업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기합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 사춘기 시절이 발광할 때는 부모는 그야말로 정신이 돌아버릴 지경이라고 합니다. 자녀 때문에 기쁘고 행복했던 시간보다는 지금 힘들고 고통스러운 부딪힘을 이기지 못해 부모도 같이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흐르고 보니 아이들도 철이 들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 왜 그렇게 야단치셨는지, 그렇게라도 매를 들어 가르치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표하는 날이 있습니다.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이 말씀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께서 그 뒤를 따라오며 울고 있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밤이 새도록 고문을 당하시고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올라가시는 예수님,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요?
그 뒤를 울면서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해 뒤돌아보시면서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아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으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춘기 아이들의 돌출행동을 아셨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똑같습니다.
오죽했으면 BC 5세기 후반에 살았던 소크라테스가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어’ 라고 했을까요? 과학은 발달하고 기술은 발전하여 편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 지고 있지만 인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악해지고 있습니다.
자녀교육!! 참 쉽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자라면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제 할 일 손볼 것이 잘 자라주는 자녀가 있다면 그 무엇보다 복 받은 가정일 것입니다.
꼭 정답은 아니겠지만 제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함께 둘러앉아 드리는 가정예배는 참으로 귀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성경을 돌아가면서 읽기만 해도 아이들 마음속에 하나님 말씀이 새겨집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자녀들 무릎 꿇고 부모가 머리위에 손을 얹고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기도 해줘 보세요. 부모 앞에 무릎 꿇어 효도하는 자녀 되고, 말씀 앞에 무릎 꿇어 순종하는 자녀 됩니다.
꼭 실천해 보세요. 방법을 가르쳐 줘도 하고 안하고는 5년 후부터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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