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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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인가 싶으면 간혹 칼바람이 불어와 아직 겨울은 죽지 않았음을 고(告)하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았습니다. 눈도 많지 않아 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보내는 것 같아 조금은 섭섭하기도 합니다. 겨울이라면 혹한도 견뎌보고 쌓인 눈을 치우느라 구슬땀도 흘려봐야 제격인 듯 싶은데 엘리뇨 현상 때문이라니 이대로 동장군이 물러나나 싶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빨리 봄이 오면 좋겠습니다. 추운게 싫습니다.
어렸을 적 아궁이에 불지펴 밥 짓던 시절에는 겨울 아침이 참 싫었습니다.
골목을 중심으로 4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에 공동 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남자들이 물지게를 지고 나와 우물물을 길어 나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어린 나도 그 중간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가 양철통 두개 가득 물을 담아 물지게를 지고 집으로 향합니다. 시골은 눈이 참 많이 왔습니다. 사람들이 밟고 다닌 길은 반질반질해져서 무척 미끄럽습니다. 양쪽에 물통을 짊어지고 넘어지면 큰일이기 때문에 신발을 새끼줄로 칭칭 동여매고서 걸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서너번 왕복을 해야만 부엌안에 있는 커다란 물항아리를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그 물로 밥도 짓고, 물을 끓여 아버지 세숫물을 대령해야 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면 마당에 수북히 쌓인 눈을 치우느라 한나절이 흘러갑니다.
태양열에 자연스럽게 녹을 때 까지 기다렸다가는 흙 마당이 질퍽거려 난리가 나기 때문에 녹기 전에 빨리 해치워야 합니다. 마당에 쌓인 눈은 리어카에 실어 동구밖 언덕 밑에 쏟아 부었습니다. 시골 집 마당이 꽤 넓었기 때문에 깨끗이 치우고 나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고 맙니다.
눈이 그치면 다행인데 치우고 나면 또 눈이 오고, 치우고 나면 또 눈이 오고........정말 싫었습니다.
눈 치우는 일이 아주 지긋 지긋했습니다. 군
대에서도 또.............
그런데 이제는 목사가 되어서도 눈이 오면 교회 마당을 빨리 쓸어야만 했습니다.
교인들이 오다가 한 분이라도 낙상하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눈에 고생한 부교역자들이 올해는 방한화를 사 놓고 눈이 오길 기다렸는데 심술부리듯 올해는 눈이 별로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겨울이 지나가나 봅니다. 가끔 봄기운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움츠렸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코 밑으로 스쳐가는 바람 속에 봄 냄새가 묻어납니다.
이때쯤이면 동네 께복쟁이(벌거숭이 방언)친구들과 톱과 괭이를 들쳐메고 칡을 캐러갑니다.
말라비틀어진 칡넝쿨을 따라가면서 굵기를 가늠하고 골라가면서 칡을 캡니다.
칡에는 솔칡이 있고 밥칡이 있습니다(시골에서 부르는 대로). 솔칡은 씹으면 씁쓸한 맛과 함께 그 줄기가 질겨서 조금 씹다가 뱉아버립니다. 그러나 밥칡은 그 맛과 향이 뛰어날 뿐 아니라 꼭꼭 씹으면 씹을수록 알갱이가 모두 가루가 되어 몽땅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칡을 찾아 캐는 것입니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 더듬고 다니다 보면 비료 푸대로 한 가득 짊어지고 내려옵니다.
개수와 크기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한 다음 집에 가지고 가면 온 식구가 심심풀이로 질겅질겅 씹는 영양보충제가 되었습니다.
별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에 칡뿌리 몇 개는 훌륭한 먹거리가 되었습니다.
봄이 오는 냄새가 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도 봄이 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서로를 따뜻한 시선으로 축복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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