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웅 선교사님,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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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웅 선교사님, 미안합니다.
2016년 3월14일 낮 12시 경, 최철웅 선교사님의 부음소식을 들었습니다. 말기 암 판정을 받고 극복해 보려고 다방면으로 약과 손을 써 봤지만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약 1년 전쯤 전화 한통이 왔습니다.
‘류 목사님. 나 왔네’
‘아, 최 선교사님, 한국에 오셨군요. 한번 만나야지요?’
오랜만에 만난 그 분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였습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영국에서 선교 하는 동안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이국땅이고, 무슬림 청년들 데리고 사역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대소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났는데 검사를 해보니 ‘담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며 씁쓸해 합니다.
그러나 ‘목사’이고 ‘선교사’이니 기도하면서 치료를 받겠다며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
최선교사님은 1978년 호남신학대학교에서 만나 같이 공부하였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본디 심성이 착하고 정이 많아 형제처럼 우정을 나누며 38년을 지낸 사이입니다. 국내에서 열심히 목회 사역을 하던 중 늦은 나이 오십에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고 훌쩍 떠났습니다. 목회 사역, 가족 상황, 나이 등 모든 게 선교사로 합당치 못한 조건이었지만 평생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던 분이라 부르심 앞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떠난 것입니다.
선교사 파송 예배드릴 교회가 없어 고민하는 것을 알고 우리 교회에서 몇 몇 동기 목사들 초청하여 쓸쓸하게 파송예배를 드렸습니다.
동기 몇 명과 우리 교회에서 선교비 후원을 시작하였지만 그 액수가 미미하기에 사모가 직장 생활을 계속하면서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몇 년 후 선교 편지가 왔습니다.
‘류 목사님, 그동안 리서치했던 사항들을 정리하여 영국에 유학 온 무슬림 청년들을 중심으로 성경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다국적 청년들이지만 유학생들이니 똑똑하고 장래성이 있습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들이 훌륭한 크리스챤이 될 것을 소망합니다. 시간 내어 이곳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시고 구체적인 선교 전략을 짜면 좋겠습니다’
편지가 오고 전화가 여러 번 왔지만 이리 저리 대답을 피하고 한번 가보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시고 나니 고인 앞에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으면 이렇게 몸이 상할 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을까? 영정 사진 앞에 서서 한 없이 속죄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손짓하여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는 모습을 보고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 복음을 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영국이라는 선진국에 여행가는 것으로 오해할까봐, 경비가 많이 든다는 부담감 때문에, 즉답을 피하고 가지를 못했습니다. 사람 눈치를 보느라고.......
최선교사님, 미안합니다.
혼자 고생했는데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토록 망가질 때까지 살피지 못해 미안합니다.
말만 형제처럼 이었지, 형제 사랑을 나누어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 받아 모든 사역을 내려 놓으셨으니 천국에서 편히 쉬십시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따라 부활하시는 그 날, 우리 함께 주님을 찬양합시다.
유가족과 지인 몇 명이 둘러서 있는 국제공원묘지에는 따뜻한 봄 기운이 내리 쬐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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