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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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엄마 <Ⅰ>
아내와 함께 처가에 갔습니다. 시골집은 결혼 후 31년이 지났지만 문짝 몇 개 고쳐 진 것 외에는 옛날 모습 그대로 입니다. 페인트가 벗겨져 녹물 흘리고 있는 철 대문을 지나면 지난겨울 폭설에 허리를 눌려 찌그러진 채 버티고 있는 비닐하우스가 바짝 마른 시래기 타래를 품고 있습니다.
그 앞에는 제법 폼을 잡고 서 있는 분재 몇 그루가 놓여 있습니다. 장인어른이 나름 정성을 들여 가꾼 흔적이 보이는 조금 욕심이 나는 앙증맞은 느티나무 분재입니다. 하지만 수십 년 째 분갈이를 하지 않아 뿌리가 고무 통을 터뜨리고 기어이 땅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마당을 지나면 조금씩 기둥이 기울어져 가고 있어 보기에 약간 불안한 창고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돼지도 키웠던 우리가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면서 아내는 ‘엄마!’를 부릅니다. 아내는 아직도 장모님을 ‘엄마’라고 부릅니다.
장모님은 딸의 목소리를 듣고 부엌방에서 ‘어이~ 큰 딸 왔능가’ 맞이하시고, 장인어른은 안방 문만 열고 ‘어서 와라’ 하십니다.
넙죽 큰 절을 올리고 나니 장모님은 두 손을 덥석 잡고 ‘바쁜데 어떻게 왔어?’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띠며 좋아 하십니다.
수원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점심대접하고 당일치기로 올라갈 참이기에 그리 오래 얘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내는 주방으로 나가 자유롭게 놓여져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냉장고 문을 열어 빠른 속도로 먹을 수 있는 것과 버려야 할 음식을 구별해 놓습니다.
차츰 기억력이 약해지시면서 유통기한과 상관없이 드시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아내는 과감하게 내다 버립니다. 장인어른은 기억력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장모님을 보면서 무척 안타까워하십니다.
무릎이 아프니까 걷지 않고, 걷지 않으니까 점점 발에 힘이 빠지는 악순환 속에서 드시고 나면 다시 눕고, 일어나 대충 식사하시고 다시 눕는 아내를 탓하면서도 어쩔 수 없음을 한숨으로 쏟아 냅니다.
대략 정리를 마치고 나서 외출복으로 갈아입으신 두 분을 모시고 읍내 식당으로 갔습니다. 버섯 불고기, 오리탕, 삼계탕, 풍천 장어, 그중에 무얼 드시겠냐는 질문에 장인어른은 즉답을 피하시고 ‘장어는 비싼디~’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은 장어를 드시고 싶다는 표현임을 압니다.
이가 약하다, 위가 약하다, 장 기능이 약하다 고 하시면서도 내가 먹는 양만큼 드시는 것을 보면 그 동안 장모님 손에 잘 드시지 못한 게 분명합니다.
어른들은 외지에 사는 자녀가 전화만 해도 무척 기뻐하시는데 오늘은 자녀를 만나고 별미까지 드시고 나니 무척 행복하신가 봅니다. 식후에 준비해 간 봉투를 각각 전해 드렸습니다.
장인어른은 자꾸 기억력이 약해져가는 장모님이 돈을 어디에 둔지도 모른다며 본인에게 달라고 하시지만 장모님은 ‘씰데없는 소리’라며 일축하시고 흐믓한 얼굴로 주머니 깊숙이 질러 넣습니다.
돈은 남녀노소 누구나 다 좋아합니다. 아니 사랑하기까지 합니다. 모두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다시 시골집으로 왔습니다. 이제는 수원으로 돌아와야 할 시간입니다.
옛날 같으면 당신이 직접 창고에 가셔서 쌀자루를 꺼내 오시고, 손수 담그신 고추장, 된장을 퍼 주실텐데 이제는 그럴 힘이 없으십니다. ‘창고에 가면 주워 놓은 은행 있으니까 가져 갈 만큼 퍼가라.’ 눈어림으로 40kg는 될 것 같습니다.
저 만큼 은행을 모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 허리를 구부리고 주워야 하며, 냄새가 고약하기로 유명한 은행 껍질을 씻어 말리려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을까? 이제는 담아 줄 힘도 없으셔서 ‘퍼가라’하시는 그 말씀에 가슴이 저려 옵니다. 많이 담았습니다. 그리고 크게 인사하고 잘 먹겠다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은 자식하나라도 오면 주시려고 몸에 좋다는 은행하나 드시지 않고 보관해 두었습니다. 자루를 들고 나오는데 장인어른이 부르십니다.
‘에미야, 저쪽에 가면 호박도 하나 따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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