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롱불 - 촛불 – 횃불 – 들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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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 - 촛불 – 횃불 – 들불
어렸을 때 우리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되면 집안에는 호롱불이 켜졌습니다.
꼭 필요한 곳, 꼭 필요한 시간에만 불을 켰다가 일을 마치면 즉시 ‘후’ 하고 껐습니다.
밤에 공부를 해야 합니다.
책상 맡에 호롱불이 약해 글씨가 보이지 않습니다.
호롱 뚜껑을 열고 심지를 살짝 올려놓으면 불이 밝아집니다.
그 아래서 책을 보고 나면 코 밑이 연기에 그을려 새카맣게 됩니다.
엄마는 공부보다 기름이 많이 드는 것이 아까워 심지를 다시 집어넣습니다.
‘엄마는 내가 공부하는 게 좋아? 기름 값 아끼는 게 좋아?’
제사 때 쓰려고 양초를 샀습니다.
양초 밑을 성냥으로 녹여 책상에 붙여 놓았습니다.
양초는 호롱불보다 10배는 더 밝았습니다.
두 팔을 쭉 뻗어 책을 봐도 글씨가 또릿또릿하게 잘 보입니다.
촛불 아래 공부하면 코가 새카맣게 되지 않아 좋았습니다.
몽당 양초는 교실 바닥 광을 내는 데 문지르고 다녔습니다.
‘철배야 제사 때 쓰려고 사 둔 양초 어디 갔니?’
고교 시절 방학 때 친구들이 우리 집에 모였습니다.
밤에 뭘 할까? 고민하다 물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대나무에 솜뭉치를 엮어 달아 횃불을 만들었습니다.
밤 10시,
횃불 아래 물고기가 잠자고 있습니다.
족대를 옆에 두고 손으로 살짝 건드리면 졸린 물고기가 들어옵니다.
횃불이 약해지면 깡통에 채워간 석유에 적시면 다시 불꽃이 살아납니다.
그렇게 두어 시간 개울을 더듬고 나면 푸짐한 매운탕 한 그릇씩 먹을 수 있었습니다.
‘횃불 들고 또 한번 고기 잡으러 갈까?’
사십년 지기 친구와 추억담입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들불을 지폈습니다.
농약이 없던 시절 방충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논 저 논에서 불을 피워 잠자는 해충을 태우므로 풍년을 기약했습니다.
친구들과 들불모아 옹기종기 둘러앉아 고구마를 구워먹습니다.
가끔 북풍에 성난 들불이 산을 태우기도 합니다.
동네 어른들 양동이 들고 산에 올라 진화하느라 겨울에 진땀 빼는 날이 있었습니다.
‘들불 피울 때는 바람을 조심해야 한다.’
아버지 훈시입니다.
안방에 있던 호롱불이 들불 되어 세상을 밝히는데 지근거리 100m 거리 청와대는 불이 꺼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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