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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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부부가 외출할 시간이 되면 저는 지금도 아내의 머리 손질을 해 줍니다.
아내가 화장을 하는 동안 감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려주고, 제법 솜씨를 뽐내며 헤어롤브러쉬 하나로 헤어스타일을 멋지게 꾸며줍니다.
아내는 진심으로 ‘당신이 머리 손질을 해 주면 마음에 쏙 든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내에게 칭찬을 받기 까지는 눈물겨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난이 헤어 기술을 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30여 년 전, 부교역자 생활을 할 때는 아무래도 살림살이가 팍팍했습니다.
솔직히 교회에서 주는 사례비 가지고는 가정 생활비, 자녀교육비, 집안 애경사, 기타 경비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니 모든 활동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아내도 딸도 미장원에 갈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때가 되면 조선시대 죄인이 칼을 쓰는 것처럼 신문지에 구멍 내어 뒤집어쓰고, 보자기 둘러쓴 채 방안에서 부엌 가위 가지고 쓱싹 쓱싹 커트를 해댔습니다. 그렇게 커트하는 저도 용감했고, 주저앉아 머리를 맡기고 있는 아내와 딸도 대단한 믿음이었습니다. 아이는 어렸을 때이니 뭘 몰라 그렇다 치더라도, 30대 풋풋한 새댁인 아내가 그렇게 커트를 하고 밖에 나간다는 것은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딸이 어렸을 때는 긴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디스코 머리를 땋아주었습니다. 지금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숙련된 솜씨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DNA를 아들이 이어 받았나 봅니다.
어느 날 아들이 보자기를 둘러쓴 채 나왔습니다. 다 큰 청년이 무슨 보자기 쓰고 한쪽 주먹손을 들고 소파에서 뛰어 내리면서 ‘수퍼맨!’을 외치며 만화 주인공 흉내 낼 것도 아니고.....
아들은 커트기를 가지고 오더니 혼자 거울을 보면서 자기 머리카락을 커트하는 것 아닌가?
이건 또 왠 시츄에이션? 아들은 혼자서 쓱싹 쓱싹하더니 곧이어 툴툴 털고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미장원 갈 비용을 아끼려는 것이라니 내 참, 이제는 먹고 살만 한데도 절약하던 버릇이 남아 있어서 인지 지금도 가끔은 아내가 머리를 커트해 달라고 보자기 뒤집어 쓰고 나오는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아내는 나를 믿고, 나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커트를 하거나, 혹은 드라이기로 머리 손질을 해 줍니다. 이마 앞으로 살짝 애교머리를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볼 때 사모 헤어스타일이 멋지다고 여겨지거든 저의 솜씨라고 알아주시면 됩니다.ㅎㅎ (미장원 원장께 미안!)
저는 아내 머리를 손질해 주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내와 함께 미장원에 갈 때가 있으면 원장님의 손길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머리로 기술을 익힙니다.
부부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남자들은 기겁을 하고, 아내들은 부럽! 부럽!을 연발합니다. 부부의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나의 건강을 챙겨주기 위해 늘 연구하며 식탁을 준비합니다. 이번에는 요거트에 생미역을 담가 두었다가 매일 먹으라고 내 놓습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지만 아내의 사랑하는 마음을 받아 별로 맛이 없지만 맛있게 먹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는 ‘너희 엄마 솜씨는 세계 제일이다!’고 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