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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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 이사
34년 전, 첫 번째 신혼집은 서울 장안동에 있는 화성연립 빌라 2층, 주인이 작은 방 두 개를 쓰고 우리에게는 안방 하나를 내주었습니다.
주방을 같이 사용하고, 화장실 하나를 가지고 눈치 봐가며 사용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신혼이기 때문에 모든 상황의 불편함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고 잘 수 있음이 마냥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수입이라곤 교육전도사 사례비(14만원)가 전부였는데 어떻게 그 박봉으로 가정생활, 학교생활을 병행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미스테리일 뿐입니다. 아내가 잠시 직장에 나갔지만 곧 이어 시작된 극심한 입덧 때문에 그마저 그만 두었습니다.
두 번 이사를 지나 부목사 청빙을 받으니 13평 아파트를 제공 받았습니다.
그때의 감격은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4명으로 불어난 우리 가족만 사용할 수 있는 주방과 화장실이 따로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셋방살이 경험이 없다면 알 수 없는 감격일 것입니다.
사방팔방이 반짝 반짝거리도록 쓸고 닦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심방용으로 중고 프라이드 차까지 제공 받았으니 그때의 기분이란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 해 여름휴가 때 덜덜거리는 중고차를 몰고 겁도 없이 온 가족이 ‘야~호’를 외치며 한반도 일주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꽤 크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혼신을 다한 부목사 생활을 청산하고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수원 영통 황골마을로 이사 온 곳은 24평입니다. 대궐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거실이 운동장처럼 보였습니다. 청소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면 한나절은 찾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두 자녀 모두 결혼하여 분가하니 덜렁 부부만 남았습니다. 둘이 시작하여 35년이 되니 다시 둘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10번째 이사하였습니다.
아내는 이사 가기 전에 버릴 것을 미리 정리하겠다며 구석구석 박혀 있는 꾸러미들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물건들이 켜켜이 얼마나 많이 쌓여 있었는지 한 트럭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들은 이삿짐에서 이삿짐으로 옮겨 다니는 것으로 전혀 마음에 감동이 없는 잡동사니들입니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살았는데 이제는 품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서로 약속했습니다. 한 사람이 버리자고 한 것에 대해서는 이의 달지 않기로, 왜냐하면 이걸 집어 들면 아내가 반대하고, 저걸 집어 들면 내가 안된다고 하니 이러다간 다시 몽땅 싸 짊어지고 가야 할 것 같기에 눈 질끈 감고 떠나보내기로 했습니다.
버리는데도 돈이 듭니다. 새 집에 이사 왔습니다. 몇 년 전 주인이 새롭게 단장했다기에 손 하나 대지 않고 짐 싸들고 왔습니다. 아내는 물건을 정돈하며 또 다시 버릴 것을 추려냅니다. 두 자녀가 출가하면서 놔두고 간 것까지 말끔히 정리하고 나니 마음까지 홀가분해진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저것 필요한 것 같아 끌어안고 살지만 결국에는 손을 놔야만 하는 것인데 왠 미련이 그토록 많았던가?
있다고 쓰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부족한 것도 아닌 것을 그 동안 오만 잡동사니를 긁어 모은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비우는 연습입니다.
어차피 주님 나라 갈 때는 모든 것 놔두고 가야 할 판인데 지금부터 비우고 버리는 연습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모든 게 구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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