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시작된 부조리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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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시작된 부조리한 사회
2020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모든 이들 마음속에는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덕담을 나눕니다.
그렇게 되면 참 좋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새해 벽두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우울하기만 합니다. 우리나라 정치는 여전히 진흙탕 싸움 중에 있고, 대통령께서는 북한 김정은을 향하여 여전히 ‘홀로 아리랑’을 부릅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전운(戰雲)이 감 돌면서 세계 증시는 폭락하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새로운 복된 일이 생기길 바랬지만, 오늘은 어제에 이은 하루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올해도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1년 내내 바윗덩어리를 굴려야 할지 모릅니다. 신들 중의 왕인 제우스를 속인 죄값은 큰 바윗돌을 굴려 산꼭대기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시지프스는 제우스에게 저항하듯 거대한 돌덩어리를 어깨로 밀치며 땀범벅이 된 채 정상까지 올려 놓습니다. 그 순간 제우스는 다시 그 바윗덩어리를 산 아래로 굴려 버립니다. 시지프스는 산 아래로 내려가서 또 그 바윗덩어리를 똑같은 방식으로 밀고 올라와야 합니다. 죽을 고생을 다하여 정상에 올려놓으면 제우스는 또 밀어버립니다. 그는 댓가도 없고, 칭찬도 없고, 보람도 없는 그 일을 영원히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조리(不條理)란 이치나 조리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철학적 개념으로는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 절망적인 한계 상황’을 뜻합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악한 형 가인이 착한 동생 아벨을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나옵니다. 형제간에 살인극이 벌어진 현장 앞에서 그 부모는 얼마나 부조리함을 느꼈는지 죽은 아들의 이름을 아벨 즉 ‘허무함’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인간 사회는 부조리함의 세상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갖 부조리함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의 죄성은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부조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작금의 정치를 보면 그 부조리를 없앤다는 명목하에 또 다른 부조리함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시지프스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떨어뜨리고 있는 바윗덩어리를 또 밀어 올리고 있을까요? ‘이번에는 정상에 멈추겠지’라는 기대감과 희망을 가지고 밑바닥부터 시작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욥’이 그 주인공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동방의 의인이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오랜만에 만나는 자랑스러운 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쓰나미처럼 밀려옵니다. 외적이 침입하여 재산을 쓸어갑니다. 금쪽같은 열 자녀가 하루아침에 압사당합니다. 본인 몸에는 악창이 나서 견딜 수 없어 기왓장으로 긁어 대야만 하고 부인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죽어버리라고 윽박지르고 친구들이 와서 위로한답시고 불난 데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욥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욥38:1). 욥은 끝까지 고난의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이 나타나심으로 회복됩니다.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때, 묵묵히 그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부조리한 세상을 탓하지 않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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