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는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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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는 옵니다
정부에서는 지난 추석 연휴 기간을 코로나 19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고향 방문 자제, 고속도로 통행료 부과,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 판매 중지 등. 우리나라 국민들은 참 착합니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고향에 내려오지 말라 하시고, 자녀들은 ‘명절에 내려가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며 정부 지침에 따랐습니다.
명절 때마다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던 고속도로는 한산하여 최고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휴게소 식당은 출입금지 팻말과 함께 식탁 의자를 한데 모아 줄로 엮어 놓았습니다.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몇 가게만 겨우 운영될 뿐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정부의 명을 어기고 고향 방문을 강행하였습니다. 고향에 계시는 처부모님 연세가 89세, 87세. 노환으로 힘겹게 생활하고 계십니다. 2년 전 증손주를 보시고 감격해 하시며 보고 싶다 하시니 내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향에 도착하니 길가에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습니다. 착한 효자는 내려오지 않고(고향에 가지 않고 어디로 갔는지 여러분이 잘 아시지요?) 불효자는 늦게 철 들어 부모님 뵈러 오나 봅니다.
마을에 도착하니 논에는 벼가 익어 황금물결을 이루고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며 우리를 환영합니다. 상큼한 고향 공기가 콧구멍을 통해 피부 속에 전달됩니다. 도시 오염에 찌들어 있던 세포들이 ‘아이 좋아라, 아이 좋아라’ 주름이 펴지는 것 같습니다. 담벼락을 타고 내려온 호박 줄기에 주먹 두 개 크기만 한 호박이 여러 개 달려 있습니다. 골목길에 우수수 떨어져 있는 은행 알은 이미 차량 바퀴에 으깨져 고약한 구린내를 풍기면 우리를 맞이합니다. 올려다보니 늙은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감이 하나 둘씩 홍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버님, 저희 왔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큰소리로 인사말을 전했습니다. 아버님은 삐거덕~ 방문을 여시고 반갑다고 어서 오라 손짓하십니다. 딸, 사위, 손녀, 손녀사위, 손자, 손자며느리, 그리고 보고 싶어 하시던 증손녀까지 7명이 넙죽 엎드려 큰 절을 하였습니다. 작은방이 대식구로 꽉 찼습니다. 아내 왈 ‘어렸을 때는 이 방이 굉장히 커서 동생들과 큰방 작은방 뛰어다니며 숨바꼭질했는데 이렇게 작았나?’
장모님은 벌써 과일상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아버님은 두 팔 벌려 증손주를 오라하는데 아이는 증조부를 오랜만에 뵙는지라 낯설기도 하고 늙으신 모습이 무섭기도 한 모양입니다. 자기 엄마 품에 꼭 안겨 경계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어른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5만원 짜리 지폐를 꺼내 흔드시며 호객(呼客)합니다.
평소 돈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슬그머니 엄마 품을 빠져나와 손만 내밀어 돈을 움켜잡습니다. 어른은 이때다 싶어 아이를 나꿔채 안습니다. 지폐를 들고 좋은 듯, 늙으시고 낯선 할아버지 품이 싫은 듯 어정쩡한 모습에 첫 번째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늙으신 두 분만 기거하는 우중충한 공간에 밝은 웃음소리가 공간을 환하게 만듭니다. 어르신은 증손주를 품에 꼭 안고 얼굴을 부비며 행복해하십니다. 손자 며느리도 2월에 출산한다 말씀드리니 ‘그때까지 살아 있을까?’ 눈빛에 아쉬움이 역력합니다. ‘그럼요, 지금처럼 관리 잘하시면 100세까지도 가능하시지요’ ‘허 허 ~~~~ 글쎄........’
‘호박 따 놨으니까 갈 때 가지고 가라’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가 증손주 머리만한 호박 댓개를 따 두셨습니다. 건강하실 때는 농사지어 쌀도 주시고, 고춧가루도, 고구마, 은행을 자루 채 주셨는데 이제는 더 이상 주실 게 없습니다. 호박 하나에 당신의 마음을 가득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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