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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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서 출발한 ‘가을’이 400km를 달려 어느덧 전북 고창에 이르러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고향 가는 길 좌우에는 울긋 불긋 푸릇 색동옷 입은 가로수가 나뭇가지를 흔들며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 길 너머 논과 밭에는 황금물결 일렁이고 골목길 담장 안에는 대롱대롱 까치밥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산새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문은 벌써 열려 있습니다. 텃밭 비닐하우스는 몇 년 전 폭설에 찌그러진 채 찢어진 비닐이 힘없이 우릴 맞이합니다. 풀 한 포기 없고, 낙엽 하나 없던 마당에는 언제부터 점령당했는지 여기저기 쓰레기가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아버님, 저희 왔습니다’
드르럭 방문이 열리고 우릴 기다리시는 아버님은 벌~써 외출복 입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 오늘도 이어집니다. ‘많이 살았어(90세), 친구들은 다 디져버리고(죽고) 나만 남았어’. 다리를 다쳐 엉덩이로 밀고 다니시는 어머님은 ‘아이고, 우리 류목사 왔능가. 바쁜 사람이 어떻게 왔당가’ 백발에 이 하나 없는 장모님은 영락없는 ‘호호할머니’입니다.
두 분을 모시고 도착한 곳은 ‘법성포 굴비 정식’ - 맛집을 검색하여 무작정 찾아간 곳입니다. 여기저기 항아리를 뒤집어 놓고 망태기, 소쿠리 걸어두고 나름 전통 식당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리랑 민요가 흘러나오고 개량 한복을 입은 주인이 친절하게 맞이합니다. 굴비정식 한 상에 10만 원 – 법성포에는 수백 개 ‘굴비 정식집’이 있지만 자기 집만의 고유한 맛을 낸다며 자랑이 거미줄 타고 나옵니다. 마스크를 썼기 망정이지 반찬마다 침이 튕겨갈 뻔했습니다.
보리굴비, 굴비찌개, 굴비구이, 굴비무침, 굴비젓갈, 굴비튀김, 한 상 가득 올려졌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아버님 ‘나는 째끔 밖에 못 먹어’ 그러시던 분이 어느덧 한 공기 다 드시고 남은 반찬까지 맛있게 드십니다. 매일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며 규칙적인 식생활을 하지만 자녀와 함께 외식하는 이 시간이 좋으신가 봅니다. ‘어이~~,많이 먹어’ 장모님을 챙기십니다. 장모님은 ‘류목사가 사중게 겁나게 마싰구만’. 맛있게 드시니 고맙습니다.
‘어머니, 많이 드세요’
앞으로 이런 날이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콧잔등이 시큰거립니다. 멀리 살고 있다는 핑계로 효도는 마음에 있어도 못하고, 알면서도 못합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분명 후회할 걸 알면서도 못합니다. (처)부모님은 전쟁 직후 가난한 집에서 6남매 다 키우셨는데 6남매 자식들은 나름 잘살고 있으면서 두 분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라, 부모에게 불효하면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한다는 말입니다. 알면서도 잘 안됩니다. 함께하고 있는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 싶어 식후에 바닷가를 향했습니다. 법성포 해안도로를 따라 서행하였습니다.
‘저~기가 가마미 해수욕장이고, 그 옆이 영광원자력 발전소여, 옛날에는 가마미 해수욕장이 유명했는디 원자력 발전소 들어오면서 망해버렸어’
소싯적 기억이 새로우신지 돌아오는 길에 지역과 지명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하십니다.
‘아버님, 마음속에 꼭 예수님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 믿어야제, 그래야 천국간담서’
두 분을 내려드리고 다시 수원으로 오는 길 – 땅거미가 밀려옵니다. 황금물결도, 색동저고리도 어둠 속에 사라집니다. 이 어둠이 지나고 나면 다시 내일 밝은 아침이 오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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