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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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여보, 나 눈길에 넘어졌는데 많이 아프네’
회의차 서울에 갔다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전화를 받은 나는 온갖 상상이 펼쳐진다.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알려준 장소로 부리나케 뛰어가는데, 평소에 운동하지 않은 탓인지 몇십 미터 달리지 않았는데 벌써 숨이 차오른다.
마을 뒷동산은 평소 산책을 자주 하는 코스라 익숙한 곳이지만 이날따라 멀게만 느껴진다.
눈이 내려 날씨가 차갑지만, 집 안에 있느니 운동하러 나간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꼼짝 못 하고 앉아 있는 아내를 부축하여 병원에 가서 X-ray를 찍으니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고 인대가 늘어났으니 발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조심하면 된다는 말에 한숨을 돌렸다.
함께 산책하면서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건강 지키려고 운동하다 다치면 더 큰 일’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건만 기어코 다치고 말았다.
조심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순간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고통으로 안겨 온 것이다.
넘어지는 순간에 뚝 소리가 났다는데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날이 갈수록 통증이 사그라지지 않아 재검하니 종아리뼈가 골절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첫날 왜 그걸 발견 못 하고 오진을 했을까?
잠시 불평이 나왔지만... 아내는 통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나온다.
처음 목발을 짚는 터라, 어깨에 목발을 밀착하고 어떤 발을 먼저 내밀어야 하는 건지, 아픈 발을 먼저 내딛나, 안 아픈 발을 먼저 내딛나, 고민이 되나 보다.
엉거주춤하다 또 넘어질 것 같다.
깁스를 하고 처량하게 앉아 있는 아내를 보니 갑자기 불쌍한 생각이 든다.
10여 년 전 큰 수술을 한 이후 꾸준하게 걷는 운동을 한 덕분에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았는데 눈길에 낙상했다고 뼈가 부러지다니... 골밀도가 약해진 것인가?
체력이 달린 것인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아내의 정수리에 피어 있는 흰머리 속에 1년 전 돌아가신 장모님 얼굴이 오버랩되며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 살림살이는 자연스럽게 내 몫으로 넘어왔다.
아내는 입은 다치지 않았으니, 모든 집안일은 말로만 하고 나는 행동으로 뛰어다닌다.
평소 부엌살림을 해 보지 않았으니, 쌀이 어디 있는지, 잡곡은 어디 있으며, 반찬은 무얼 내놓아야 하는지, 한숨 쉬며 시키는 아내나 씩씩거리며 돌아다니는 나나 둘 다 신혼 초년병 같다.
신혼 때는 달콤하기나 했지, 결혼 생활 40년이 되도록 각자 임무에 충실하다 역할을 바꿔 보니 모든 게 서툴기만 하다.
그래도 약해 있을 때 서운하게 대하면 남은 평생이 힘들 것 같아 억지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상대방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가벼운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성도 중 최근 낙상 환자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올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다 보니 미끄럼에 익숙지 않아 골절상을 입는 분들이 많다.
교회 로비 바닥 타일은 물기에 아주 취약하여서 물기가 조금만 있어도 얼음판처럼 미끄러워 늘 불안하다.
빨리 대책을 세워야겠다.
한문에 <불치원장도후회不治墻盜後悔>라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면 안 되겠다.
눈이 자주 내리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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