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빼앗긴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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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에게 빼앗긴 휴가
지난여름 교회와 노회 선교가 줄지어 진행됨으로 여름휴가를 보내지 못하고 노회장 임기를 마치고 지난 한 주간 휴가를 냈습니다.
어디로 갈지 고민할 시간도 없이 아내가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지인 사모님들과 한 주간 카자흐스탄 선교를 다녀 오더니 무리했던 모양입니다.
하루 이틀 쉬면 회복되리라 생각했는데, 갈수록 기운을 차리지 못합니다.
급기야 간호사 집사님을 불러 사정 얘기를 하고 응급조치를 하였습니다.
1주일 휴가 중에 이틀이 간병하느라 지나갔습니다.
겨우 몸을 추스른 아내가 미안한지 휴가를 떠나자고 합니다.
요즘 사업을 접고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딸에게 전화하더니 같이 가자 합니다.
그러잖아도 심심하던 차에 두 아이 모두 유치원 결석시키고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아이들은 결석이 뭔지 어찌 알겠습니까?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랑 놀러 간다고 하니 방방 뛰며 달려와 안깁니다.
휴가는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재잘거리는 두 아이와 5명이 한 차를 타고 강원도로 향했습니다.
벌써 알록달록 단풍이 태백산맥을 색동옷으로 입혀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을은 참 예쁘지요.
봄이면 연초록으로 여심을 설레게 하고 여름이면 진한 초록으로 남성의 마음을 요동치게 합니다.
가을이면 빨강, 초록, 노랑 등 형형색색으로 변신하여 모두의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올 단풍은 늦더위 때문에 좀 늦답니다.
그래도 온산을 캔버스 삼아 멋진 그림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하루에 약 20km씩 남하하면서 전국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지요.
아이들은 단풍에는 관심 없고 재잘거리며 차 안에서 먹는 간식에만 정신이 팔렸습니다.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하여 방안에 짐을 풀었습니다.
웬 짐이 이리 많은지 보따리 보따리 들고 밀고 끌고 가느라 진이 빠질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한 달 살이는 너끈할 것 같습니다.
짐 정리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놀이터에 가자고 옷깃을 잡아당깁니다.
‘아빠 엄마 다녀오세요, 저에게도 잠시 휴가를 주세요’ 딸은 침대에 벌러덩 드러눕습니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습니다.
한 시간도 그대로, 두 시간이 지나가는데도 이제 막 시작하는 것처럼 에너지가 철철 넘쳐흐릅니다.
처음에는 아이들 뒤꽁무니 따라다니며 뛰어다니다가 이내 지쳐 털썩 주저앉아 애들 뛰노는 것만 응시하고 있습니다.
대단하다, 먹는 양은 그리 많지 않은데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3시간째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해가 져서 캄캄하다는 핑계를 대고 억지로 안고 올라왔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것도 에너지가 소비되나 봅니다.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다음 날 이른 새벽 애들은 벌써 일어나 ‘하비, 하미 일어나세요’ 곤한 잠을 깨웁니다.
이건 휴가를 온 건지 애들 노는데 중 노동하러 온 건지 구분이 안 갑니다.
아침 먹고 애들 씻기고 방 정리하고 나서는데 벌써 11시 체크아웃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번에는 바닷가에 갔습니다.
애도 어른도 바다를 좋아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쌍쌍이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다닙니다.
찰랑거리는 파도와 장난하느라 옷은 이미 젖었고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모래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아기 엄마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우리 애들 키울 때는 몰랐는데 이제 손주들을 보니 딸이 불쌍하게 보입니다.
그래 천방지축 애들 키우느라 고생하는데 조금이라도 쉬어라 생각하며 애들 뒤꽁무니를 따라다닙니다.
애들 엉덩이에서 페로몬이 나오는지 졸졸졸 따라다닙니다.
2박 3일 동안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의 휴가를 잘 보냈습니다.




